검사니 전력 : 근시와 첫 단도, 그리고 초기도

연성



 사니와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침대에 앉아있던 그녀는 목에 꽁꽁 둘러메인 목도리를 살짝 끌어내리며 기침했다. 그러자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미츠타다의 손에 행동을 제지당했다. 어깨 아래로 흐트러진 담요는 히라노가 다시 끌어올리고 우라시마가 벙어리장갑을 기어이 끼워주고 만다.


 "하아... 다들 과보호라는 건 알고나 있는건지요."

 "사니와는 연약한 인간이니까 말이지. 야스사다 군, 이제 갖다 드려라."


 그 뒤에서 소우자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생강차를 타고 있던 우구이스마루에게 간단히 일침을 먹었다. 완성품을 받아든 야스사다는 어느새 숟가락까지 들고 사니와의 입가에 떠 먹일 기세였다. 머리맡에 앉아있던 카슈는 이미 그녀가 죽느냐고 한바탕 울고난 뒤였다. 


 소우자의 말에 백번 동감하고 있던 사니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면서 기침했다. 기침 횟수가 늘어날수록 야스사다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방 한켠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츠루마루가 일회용 핫팩을 흔드는 속도도 빨라졌다. 전에 없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인지부조화로 정신부터 나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방 문 사이로 눈물 그렁그렁한 고코타이와 아키타를 발견하자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얼굴을 가리고 속으로 울었다.


 "다들 좀 비키지 그래? 이시키리마루 님, 이 좁은 마루서 검 빼드시면 안됩니다."

 "야겐 형, 빨리빨리이~ 이러다 사니와가 잔뜩 아파지면 어떡해~?"


 방 안을 들여다보던 시선이 사라지고 장지문이 활짝 열리자 살아있는 벽처럼 빼곡히 모여든 남사들이 있었다. 그 사이로 미다레가 등을 떠밀어준 덕분에 겨우 들어온 야겐이 흐트러진 옷을 추스리며 일갈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워야 몸도 마음도 약해진 인간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일단 다들 진정하고.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오히려 환자에게 방해됩니다. 카슈 군과 근시인 소우자만 빼고 다들 돌아가 계시길."

 "하아? 그거 편애 아니야? 적어도 나같은 1군은 남아있어도 되는 거잖아!"


 시시오가 냉큼 발을 안으로 들이밀며 외쳤지만, 동물의 털은 감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으로 묵살됐다. 하는 수 없이 각자의 집에서 대기하기로 정하고 물러가자 겨우 숨통이 트인 사니와는 음산하게 신경질을 내며 장갑을 벗어던졌다. 그 마음 씀씀이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손을 포함해 온몸에 흐르는 끈적한 땀이 기분 나빴다.


 야겐은 사니와의 입에 체온계를 물려두고 카슈에게 미지근한 물수건을 만들어오라고 지시했다. 혹시 몰라 맥까지 짚어봤지만 역시 단순한 목감기일 뿐이었다. 방치하면 폐렴까지 진행될 수 있었지만 감기증상을 보인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야겐은 구급상자에 있던 현세의 약을 처방해주고 사니와가 물까지 확실하게 들이키자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금방 나을 거라 다행이네. 코가 막히거나 따로 아픈 곳은 없고?"

 "으응. 그냥 좀 어지럽고 더워. 소우자, 목에 이것 좀 풀어봐."

 "사니와는 진짜 괜찮은거야? 응? 말 좀 해봐, 야겐 씨!"

 "목도리나 장갑까지 낀건 너무했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3일 정도만 안정하면 쉽게 낫는 병이야. 정 걱정되면 땀이라도 닦아드려. 마르면서 체온을 빼앗아가니까."


 카슈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닦기 시작했다. 목에 있는 천까지 떨어져 나가자 사니와는 수고해주는 카슈의 등을 토닥여주고 편하게 드러누웠다. 남사들이 이것저것 덮어준다고 눕기도 힘들었다. 야겐은 남성을 앞에 두고도 눈을 감기까지 하는 태연자약한 모습에 혀를 차며 담요를 덮어주었다. 움츠리던 사니와의 몸이 따뜻함에 풀어지며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여린 동물 같은 움직임에 살짝 웃어버린 그는 담요로는 모자르겠다는 생각에 침대 구석으로 밀린 이불에 손을 뻗었다.


 "야겐. 그 외에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나요?"


 다만, 손에 쥐기도 전에 재빨리 낚아채간 소우자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는 문제가 생겼다.


 "소우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야겐."


 평소와 다름없이 웃는 얼굴로 사니와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준 그는 사니와의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치워냈다. 야겐은 그 천연덕스러운 경계, 혹은 견제가 자신의 신경줄을 건드린다고 생각했다. 소우자가 품은 심정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호의를 방해받는 경우는 스스로도 참기 힘들었다. 야겐도 도검남사였다. 사니와가 편애하는 대상자를 보면 참을 수 없이 질투를 느끼는, 그녀의 검이었다. 


 "어이, 거기. 정도껏 하시지. 그러다 사니와가 또 자리 박차고 일어날라."


 목덜미를 닦아주다 고개를 든 카슈는 상황 못가리는 남사들에게 경고했다. 설핏 잠들었던 사니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피곤한 목소리를 내며 억지로 눈을 뜨려고 하자 이불 덮인 어깨를 토닥이며 어린아이 돌보듯 얼렀다. 


 "으으으.... 무슨 일이야? 누가 싸워...?"

 "엇, 아냐아냐. 사니와는 신경쓰지 말고 자. 응? 얼른 나아야지. 다들 걱정하고 있다고."

 "응..."


 느긋한 손길에 무심코 기대고 만 사니와는 고개를 카슈 쪽으로 들이밀고 편한 표정을 지었다. 소우자는 카슈를 보며 이를 갈았고 야겐은 두 손을 들며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다들 잊고 지내지만 카슈는 사니와의 초기도였다. 애정보다도 굳건하게 사니와를 차지할 수 있는 신뢰 면에서는 누구도 카슈 키요미츠를 이길 수 없었다.


 사니와를 재우고 다 식어버린 물수건과 작은 대야를 든 카슈는 눈짓으로 둘을 불러냈다. 조용히 사니와의 방과 이어진 복도를 걷고, 그녀와 한참 떨어진 부엌에 도착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잘하는 짓입니다, 둘 다? 특히 소우자 씨. 사니와 앞에서 분란 일으키지 마."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건가요? 그쪽도 역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까?"

 "이봐, 소우자..."


 야겐이 소우자를 붙잡았지만 당사자인 카슈는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올렸다. 화려하다 못해 비린내까지 품은 미소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자기 팔을 톡톡 두드리며 소우자를 비웃었다.


 "잊어버린 모양인데 내 묵인 없이 사니와 곁에 남아있을 줄 알아? 난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근시자리를 내어달라고 조를 수 있어."


 그리고 사니와는 어떤 의심도 없이 카슈 키요미츠의 말을 받아들일 터였다. 그녀를 가르친 스승인 카센의 말에도 토를 달기 일쑤인 것에 비하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사니와를 주군으로만 받드는 이들도 부러움에 몸부림치니, 흑심 가득한 남사들은 패배감에 젖어버리곤 했다. 지금도.


 한참을 굳어있던 소우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카슈의 시야를 벗어났다. 괜히 사이에 끼어 긴장하고 있던 야겐은 그 뒤를 따라갈 생각도 못하고 식은 땀을 닦아냈다. 카슈는 소우자의 그림자가 사라져도 오랫동안 노려보고 있다 야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야겐 씨도 괜히 도발에 넘어가지 마. 지금은 사니와의 건강만 생각해."

 "알겠어. 카슈군, 그렇게 안봤는데 무서운 검이었네."

 "다루기 어렵지만 성능은 좋은 편이라고? 가서 다른 이들에게도 사니와 상태를 전해줘. 난 야스사다한테 가볼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검은 앳된 소년처럼 사랑스럽게 웃었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은 본능마저 억누르고 곁을 지키려는 의지가 느껴지자 야겐은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사니와의 첫 검다웠다.